국화꽃의 기억 – 숨겨진 트라우마
마인드원 심리상담센터 대표 차주현
아! 그간 잊고 살았는데…
어린 시절의 이런 문제가, 내 삶을 이렇게 뒤 흔들어 놓을지는 몰랐습니다.
노란 자태도 고고한 황금색의 꽃잎을 활짝 피워 세우고,
순백색의 깨끗함이 눈이 부시게 피어오르는 가을은 국화꽃의 계절입니다.
전국에서 개최되는 국화꽃 축제를 살펴보니 풍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륵사지 석탑으로 유명한 익산에서는
천만송이나 되는 국화축제를 연다고 합니다.
영암에서는 왕인 국화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아스카飛鳥문화와 나라奈良문화의 시조이며,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전반에 걸쳐 문명의 등불을 비추어준,
자랑스런 우리들의 선조, 백제의 왕인박사를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쓰레기처리장을 친환경적으로 탈바꿈시킨 인천에서는
드림파크라는 것을 지어 쓰레기 더미위에서,
아름다운 국화를 키우는 마술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보 제130호 선산 죽장동 오층석탑이 있는 구미시에서는 천생산, 쌍용사 국화축제를,
그리고 인사동 전통문화의 맹주인 조계사에서도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 앞마당에 국화를 전시하고 축제를 합니다.
아래지방으로 드라이브를 떠날 계획이 있는 분들은,
짭쪼름한 바닷내음과 함께하는 마산부두의 가고파 국화축제를 찾아보길 추천합니다.
마산은 우리나라 국화재배의 역사가 최초로 시작된 곳이랍니다.
1960년 여섯 농가가 처음으로 국화재배를 시작하고,
1976년에 이르러서는 일본에 수출도 시작하니,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하는 “잘 살아 보세”의 주역들입니다.
전라도의 드넓은 곡창지대를 품고 있는 함평에서는
예향의 고향답게 이름도 근사한 대한민국 국향대전을 볼 수 있습니다.
양평, 진주, 고창, 서산 등 전국 어디에서도 풍성한 국화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가을은 국화여왕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는 그런 시절입니다.
그러나 오늘다룰 사례는 사실 국화꽃을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명철 씨의 삶은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엔 착한 어린이였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들에,
남들 가는 군대도 큰사고 없이 잘 다녀왔으니 말입니다.
예쁜 처자 만나서 한집안의 가장이 되어 열심히 살았으니,
그저 평탄하다고 할 만한 인생입니다.
문제가 생긴, 어느 날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명철 씨는 유능하고 열성적으로 일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명철 씨가 심리적 문제의 자각증상을 알아차리기 이전부터,
그의 삶은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메말라 있었습니다.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요.
생활의 여유를 조금씩 체감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마음 한켠에서 조그만 불편의 싹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고통의 시작은 예전부터 잠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 쫓겨 자각하지 못하고 지내온 터라 혹시 슬럼프에 빠졌나? 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찾으며 위로도 해 보았습니다.
모두가 낮설게 만 느껴졌습니다. 대인관계 또한 점점 꼬여만 가고 있었고요.
명철 씨는 상담과정 중에 어렵게 입을 열며 말을 시작했습니다.
일반사람들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는 국화가
자신에게는 불편함으로 점점 크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서둘러 변명하듯이 말하기를,
대한민국에 보통남자들은 그저 다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을 하곤 했습니다.
꽃은 젊은 여자들이나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치부하며,
문제를 서둘러 덮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태도는 내담자의 심리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담을 이어 나갔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저의 눈치를 살피면서,
피곤하면 그럴수도 있느냐고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그런 자신을 이해 할 수가 없다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명철 씨의 질문은 속사포처럼 연이어 쏟아졌습니다.
내면적인 성격은 논리적이고, 따지기를 좋아하며, 의심이 많은 성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최면 감수성도 아주 낮게 측정되었습니다.
이런 내담자는 적절한 지도와 함께,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살펴보게 하는 방법으로,
집중수행명상을 지도하면 심리치료효과가 높게 나타납니다.
라포를 형성하는 초기심리상담 기간 동안 드러난 명철 씨의 생활은
특이점을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간의 노력으로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도 원만했습니다.
깔끔한 성격이 다시 확인되었을 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서글서글하고 밝은 성격의 태도는,
가족들을 비롯한 직장동료들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명철 씨가 국화꽃을 보면, 마음이 경직되고, 불쾌한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꽃들의 자태나 향기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매한가지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혼해서 함께 살고 있는 부인도 기억하기를, 젊어서 데이트 할 때나,
애를 둘씩 낳고 키워온 지금까지도
그에게 꽃 선물을 받아 본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습니다.
그저 무뚝뚝하고 낭만이 없는 사람이려니 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는 데는 큰문제가 없었고 아이들도 잘 커주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명철 씨에게 최면에 대한 사전 인지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최면은 TV나 동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자극적인 것이 아니며,
최면기간 동안 피최면자의 의식은 더욱 명료해지고, 뚜렷해져서
모든 과정을 기억 할 수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명철 씨는 이를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몇 번의 확인 연습으로 안심이 되자
깊은 최면으로 미끌어지듯 집중해 들어갔습니다.
명철 씨는 초등학교 때 반장을 했었습니다.
명석하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인해 같은 반에 속한 친구들
다수의 지지를 받고 선출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님의 펄럭이는 치맛바람도 없이 당당하게 반장이 되어 많이 기뻤다고 합니다.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부모의 지지와 칭찬을 기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대두된 문제는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습니다.
당시 몸져누워 계시던, 어머니는 반장을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명철 씨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반장이 된 것이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부모님의 걱정거리를 늘리는 일이 되었다니?…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어려운 자신의 현실을 먼저 보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의 부모라면 한번쯤은 이해가 가는 일이지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라고 말끝을 흐리시며,
반장의 부모가 되면 학교에 기성회비 말고 나가야 할 돈이 발생하는 것을 걱정하시더랍니다.
어린 명철이로서는 이해할 수도 수긍할 수도 없었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부모님의 예견대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학기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던 명철 씨에게,
사건이 생긴 것은 붉은 단풍이 아름다운 늦은 가을이 시작될 즈음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학교의 화원에서 소사 아저씨가 물을 주며 관리하고, 키워오던
하얗고, 노란 국화꽃이 교정에 전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명철 씨에게 부모님을 학교로 모시고 오라고 하였답니다.
명철 씨는 어머니의 걱정스런 표정만 보았지,
그 이후에 오고간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국화꽃 전시회가 끝나 갈 때까지 떠오르는 것은
담임선생님의 굳은 얼굴과 반장인 자신의 국화에만
아주 늦게까지 축하리본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린 명철 씨는 많이 불안했겠지요. 그리고 가난이 각인된 수치스런 경험을 한 것입니다.
명철 씨는 비로서 오랜 꿈에서 깨어나서,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늘 무언가에 쫏기듯이 조급하게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알지 못 할 분노와 부모님에 대한 슬픔과 동정
그리고 원망의 감정이 교차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어렸을 적 트라우마를 객관적으로 보는 일은 정말로 중요한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심리적인 문제를, 효도라는 생각과 죄책감 등 복잡한 여러가지 개념과
학습된 방법으로 억눌러 숨겨 놓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요즘 명철 씨의 일과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행복하게 변모했습니다.
꽃들과 대화를 시작했음은 물론입니다.
마음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수행에도 눈을 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욱 철저히 살펴보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변화 중에 하나입니다.
그는 얼마나 자신에게 무관심했으며,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매순간 감사의 마음이 몰려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철 씨는 진정한 건강과 행복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았다고
밝게 웃음 짓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