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진행하면서]
상담 선생님이 일지 쓰는 것을 권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계속 일지를 썼다.
처음에는 기록하기 어려웠다.
감정을 풀어내는 작업이라
쓰기만 했는데도 지쳤지만,
꾸준히 쓰니 도움이 됐다.
그중 하나가 내가 우울한 감정,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우울해진 감정에 익숙해져서
긍정적인 생각, 행동을 하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졌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긍정적인 내 모습으로 살아가니
‘내가 아닌 것 같아.’라고 자주 느꼈다.
어두운 면도 밝은 면도 둘 다 내 모습인데 말이다.
상담하기 전에 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늘 방해가 됐던 게 있었다.
‘밝은 면은 내게 어울리지 않다, 왠지 이상하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랬다.
우울함이란 진흙 속에 깊게 박히며 오랜 시간 있었으니
오히려 진흙 위 맑은 공기가 낯설었던 것이었다.
나는 심리 상담이 이런 걸 도와주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사는 사람에게
행복이 있는 곳을 바라 보게끔 하며 찾는 노력을, 방법을 도와주는 것,
이끄는 것이 상담이라 생각한다.
정신적인 문제는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고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사공이 작은 나룻배 하나로 거친 바다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롭고 힘들다.
혹자는 당신이 내면의 우울함이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것 때문에 산다는 게 괴롭다면 지체 말고 도움받으러 가길 바란다고 한다.
내면에 있는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지 않은 체
무언가 한다는 것은 등에 쇠 구슬 지고 사는 것과 같았다.
삶이라는 길을 천천히 걷기만 했는데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괴롭다.
걷는 것도 힘든데 뛰는 것을 말하면 무엇하랴.
등에 진 쇠 구슬 놓는 것이 먼저이다.
놓아야 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는 무겁지만 계속 걸어갔다.
내 문제는 내가 풀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절망스러운 일이 여러번 반복되면
이겨내는 에너지도 점점 고갈되고
도중엔 사는 것 자체가 지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도움도 청해봤다.
결과적으로 심리전문가가 아닌 이들이라 도움이 되진 못했다.
나는 센터에서 검사를 받고 상담을 하며
사람들이 왜 심리센터에 가는지 알게 됐다.
왜 좀 더 일찍 오지 못했을까라며,
혼자서 상황을 타파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란 것과 함께 말이다.
[상담을 끝내면서]
지속적으로 내 등을 봐줄 누군가,
짐을 놓는 것을 도와 줄 사람이 있어서 감사했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서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상담을 권유하고 진행해주신 원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상담을 끝내면서 다시 혼자 날 이겨내야 하는 사실에
솔직히 두려웠고 슬펐지만,
이런 생각도 놓으며 떠나 보내고 있다.
전보다 가벼워진 머리를 갖게 됐으니까..
상담이 끝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일주일 동안 도움을 주신 원장님,상담가님,그리고 카운터에서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신 상담원분이 생각났다.
그게 어느 정도 힘이 되고 있다.
나도…. 나도 그런 어른,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보다 강할 때가 언제일까.
보이는 않는 내 마음가짐으로 왜곡된 시야를 꾸준히 닦으며
살아가면 알게 될 것 같다.
끝으로 도움 주신 상담센터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비효과 같은 분들.
감사합니다.